울릉도에는 울릉도의 바람이 분다
11살,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 도시로 이사를 나와 아이큐 검사를 하게 되었다. 어쩌다가 하게됐는데 왜그랬는지는 잘모르겠다..
부모님과 그때의 담임선생님이 결과를 놓고 상당히 오랜시간 논의를 펼쳤던 기억이 있는데, 담임선생님은 뭔가를 해보자는 권유를 계속 하셨고, 우리 부모님은 거절을 하는 분위기였다.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도 아이큐 검사 후에 무슨 논의가 오고 갔으나 정말 답답하게도 도대체 아이큐가 몇인지를 끝내 알려주지 않았었고 무언가를 새로이 시작하자는 권유는 역시나 가정형편상 거절되었다. 고3에 이르러서야 세번째 검사후에 나의 아이큐를 알게 되었고, 더 어렸던 시절 오고간 논의들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며, 고3의 나에게는 아무 의미없는 이야기들이었기에 별로 신경쓰지 않고 살고 있었다. 확실한건 나에게는 그게 그렇게 좋게 작용하지 못해서, 생각이 깊어지고 많아질때면 대부분의 원인을 지능지수로 돌려버리곤 했다.
뜬금없이 무슨 아이큐 이야기를 하는가 싶겠지만, 나는 내가 항상 걱정을 많이 하고 머리아파하는 이유가 기억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무살이 되자마자 여행을 시작했다. 목적은 비워내기. 버스 노선을 찾아 헤매고, 길을 찾아 헤매고, 숙박이며 밥집을 찾아다니다보면 골칫거리들이 싹 걷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정말 많이 걸었다. 걷고 또 걷다보면 에너지가 더 솟아나는 느낌이었다.
나이에 비해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호기심이 많았다고 해야하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여행의 매력을 일찍이 마주한 덕분에 어긋난 길로 나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생각과는 너무도 다른 미래를 마주할때마다 크게 좌절하고, 어렸을때부터 아프면 아프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못하는 성격이어서 혼자 전전긍긍했었는데, 놀랍게도 여행은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그래서 미친듯이 여행을 했다. 시간과 돈이 생기면 망설임없이 어디론가 떠났다. 그렇게 5년, 10년, 15년이 지나고 약간의 매너리즘이 찾아왔다. 장소만 바뀔뿐 정형화 된 나의 틀을 깨지 못하는 느낌을 어느순간부터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로 울릉도에 가게 되었다.

울릉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었다. 섬이 다 같은 섬이겠거니 생각했고, 편하게 갈 수 있는 제주도만 해도 아직 내가 발견하지못한 수많은 매력이 존재한다고 여겼다. 때문에 굳이 경북을 거쳐 동해바다의 섬까지 배를 타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울릉도에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장소에 대한 기대보다는 여정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나는 대부분의 여행을 혼자 떠나는데, 울릉도는 제법 큰 규모의 사람들과 움직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울릉도까지 이동하는 배에서 낯선 사람들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고, 놀랍게도 함께하는 사람들이 다 좋은 사람들이어서 긴장의 끈을 완전히 풀어버렸다. 더군다나 숙박과 식사, 모든 이동사항을 제공받는 여행이었기에 나는 그저 몸을 싣기만 하면 되는... 처음 경험해보는 형태의 여행이었다.

그래서 처음 와본 곳임에도 온전히 울릉도를 바라볼 수 있었다. 보통 처음가보는 곳은 다소간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어찌저찌 여행을 마치는데, 아쉬움이 남아 다시 찾았을 때 진정한 매력을 발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번에는 그저 멍하니... 흘러가는대로 몸을 맡기며 시선이 가는 곳에 나의 마음을 두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섬이었고, 식생의 분포가 미세하게 달라서 더욱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었다. 뭔가 확실하게 이국적인 곳으로 떠나게 되면 전체적인 분위기를 흡수하는데 주력한다면, 이 곳 울릉도는 나의 기준에선 뭔가가 조금 다른, 이게 무슨 느낌이지? 싶은 장소들이 많았기에 디테일을 더 바라보게 되었다.


다음번에 울릉도에 오면 하루종일 나리분지에 있을 예정이다. 한여름이 아니라면 옷을 조금 두껍게 입고 올것이다. 바람이 정말 많이 불었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독도를 빼놓을 수 없었다. 나는 태어날때부터 수도없이 배를 타서 배멀미를 안하는데, 독도까지 가는 뱃길의 상황이 매우매우 좋지 않았었다. 배멀미란 이런 것이구나.. 다시는 배멀미 하는 사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행동따위는..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평소보다 훨씬 오랜시간을 거쳐 독도에 도착하고나니, 외로운 섬이라는 단어가 왜 붙은건지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좀 더 날씨가 좋을 때 다시 가볼까 고민은 해보겠지만, 오늘 해상의 풍랑이 어떻고 기압골의 영향으로 대기 불안정이 어떻고 하면 과감히 제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이 짓을 두번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독도로 향하는 배를 타기전에 상하의를 스톤아일랜드로 입고 파라부트의 워커를 신은 강렬한 인상의 스텝분이, 자기는 전에 독도갈 때 멀미한 경험이 있어서 절대로 안탄다고 잘 다녀오시라고 하길래 세상에... 이 좋은 기회를 왜 놓으려하실까...? 생각했으나, 이건 별로 좋은 기회가 아니었다. 역시 사람은 경험을 통해 배운다.



내가 묵어본 숙소중에 가장 비쌀 것 같은... 숙소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산책을 했다. 전날 밤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3시간도 못잔것 같았지만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샴푸, 린스, 바디워시, 로션, 비누가 다 이솝 제품이었는데, 비치품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고 어메니티라고 하기에는 좀 큰 사이즈여서 프론트에 물어보니 가져가도 된다고해서 주섬주섬 챙겼다. 이정도 숙박비를 내면 이런 어메니티를 주는구나 싶었다.


노을과 함께 포항으로 돌아왔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울릉도였다. 식당의 바가지 요금 혹은 불친절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다녀와서 찾아보니 이래저래 논란거리가 많은 울릉도 인 것 같은데 나는 그냥 좋았다. 처음갔던 프랑스 파리와 미국 뉴욕은 정말 최악이었는데, 독일 바이에른주에 있는 안스바흐라는 뜬금없는 마을은 예찬할 정도로 좋아했던... 다소 이상한 구석이 있는 나이기에..... 울릉도의 각종 논란거리에도 불구하고 나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서, 공항이 생긴다면! 비행기를 타고 다시 찾아와 볼 생각이다. 원래 이맘때쯤 공항이 거의 완성될거라고 했는데.. 뭐 여러가지 문제가 있는듯 하다.
가장 중요한 점은! 고착화된 여행패턴을 스스로 부수지 못하고 매너리즘에 빠지고 있던 나에게, 아- 이런 감정이었지, 다시금 느낄 수 있게 해준 아주 소중한 여정이었다는 것. 이 넓은 세상의 10퍼센트도 채 보지 못한 내가 너무 오만했던 것은 아닌지. 갔던 곳을 여러번 다시 찾아가는 이유가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며 울릉도의 기억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