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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가득 채운 비닐봉지를 들고생의 감각 2025. 6. 15. 11:37
그 빛이 버스 안으로 퍼지는게 좋았다는 소녀를 떠올린다. 오늘도 짙은 여운이 남는 영화 한편을 보았다. 장미가 지고 여름이 피어나는 때면, 나는 대체로 지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저 붉은 장미잎들이 떨어지며 대지의 온도를 뜨겁게 달군다고 여겼었다. 그리하여 나의 여름은 도피의 연속이었다. 어디로든, 어떻게든 피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생각의 힘은 위대하다 했던가, 어쩌면 앞으로의 여름은 기꺼이 겪어낼 수도 있겠다고 사유하고 있다. 마주하는 것들에서 얻는 에너지는 무한하다. 혹은, 함께 더 멀리 도망쳐버릴지도-이게 맛있길래 왕창 사두려고 마트에 갔는데 4개 밖에 남지 않고 전부 이상한 아이스크림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래... 4개가 어디냐며 계산을 하고 나오자마자, 한개를 우물우물 베어물었다.총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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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생의 감각 2025. 6. 14. 00:29
연락을 주고 받다가 오늘부터 장마가 시작이라는 말을 들었다. 아니 벌써...? 라는 생각이 든걸 보니, 나의 시간은 작년보다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작년까지는 주말 이틀만 기다리면서 평일을 살아왔고 문득 내가 참 바보같았구나, 부끄러운 마음과 약간의 후회가 밀려왔다. 생의 대부분을 그렇게 사용해왔고 평일은 대부분 참거나 버텨내야하는 날로 여겨왔던 것이다.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고 그게 나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중에 자신을 단정짓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도 변하고 있다고... 또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지나가는 말이라기엔 여운이 짙게 남았다. 나는 왜 나를 단정지어버린거지...? 라는 의문에 답을 할 수 없었다. 평일 일과 시간이 즐거워진 나를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가. 나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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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사이로 달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생의 감각 2025. 6. 13. 01:09
중학교 운동장 둘레에 장미가 예쁘게 펴있다며 같이 보자고 했다. 난 사실 장미같은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러더니 더 짙은 어둠속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따라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길이 막혔고, 또 막혔다. 어스름한 달빛은 계단을 충분히 밝혀주지 못했다. 다칠까봐 걱정이 됐다. 돌아가자며 손을 잡았다. 작고 따뜻한 손이 아이 같았다. 그럴수록 서글픈 마음은 하염없이 커져만 갔다. 내가 누군지 알긴 하는건지, 이 순간을 기억할 수는 있는건지 궁금했지만 둘 다 아닌 것 같아서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잡은 손을 놓는 것에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밝은 가로등 아래에 이르러 잠시 멈추었다. 하루종일 속상한 마음을 숨기지 못해 스스로를 계속 원망하고 있었는데, 가로등 아래에선 어쩐지 슬픈 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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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칠일 밤, 삼경 무렵의 달빛은 희미하고 말은 오래 남았다.생의 감각 2025. 6. 8. 02:55
뭐가 그렇게 신이 난건지, 옛날 이야기를 마구 꺼냈다. 요즘 매일같이 듣는 노래가사처럼 천진난만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것 같다. 이래도 되나..? 싶은 시기는 지나갔나보다. 무슨 말을 해도 안온해지는 나를 새삼 깨닫는다. 초등학교 1학년. 무려 1997년도에 아직까지도 누구인지 정확히 모르는 아주 먼 친척어른과 울산에서 영화를 보러갔다. 그분은 여대생이었는데, 고모부.......의...? 무슨.. 친척..? 이라고 했던것 같다. 나는 친가친척들과 왕래를 끊은지도 20년이 되어가니 앞으로도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영원히 알길이 없을 것 같다. 도대체가 내가 왜 그 당시에 울산에 있던건지 여전히 의문이다. 우리 부모님과 동생은 이모 결혼식 참석을 위해 서울에 가셨었다. 아니 나는 울산을 왜 간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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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 첫 방문다른나라 2025. 6. 8. 00:58
LA에 왔다. 웨스트 헐리우드쪽에 숙소를 잡았다. 떠나오기 전 오만가지 걱정과 두려움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는데, 도착하자마자 왜그랬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너무 오랜만에 멀리 날아온 탓인지, 여행자 모드로 이것저것 척척준비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공항에 가던 내 모습을 잃어버린 것 같아 조금 속상했다. 나는 역시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하는 사람인가보다... 첫날은 짐을 풀고, 트레이더조에서 이것저것 장을 봐온 뒤에 강제로 누웠다! 둘째날부터 2박 3일로 떠나는 투어를 신청해놓았기 때문이다. 이 투어때문에 좀 골치아픈게 있었는데, LA에서 출발하는 한인투어는 대체로 캐리어 동반이 안된다는 점이었다. 그럼 한국에서 가져온 짐을 어디에 맡겨야 하느냐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데, 보통 호텔 카운터에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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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쿠라의 여름 바다다른나라 2025. 6. 6. 16:16
5년만에 2부를 쓴다. 누가보면 장편 소설작가쯤이나 되는 줄 알겠지만, 다시 정신차리고 살아야겠다라고 마음먹기까지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나보다. 게으름과 나태함, 우유부단함을 합리화해줄 핑곗거리를 찾기에 급급했다. 돌이켜보면 내 삶의 주체가 나였던 적이 별로 없다. 지치고 소진된 마음을 어르기엔, 쉬는법도 잘 몰라서 끙끙 앓곤 했다. 그래서 삶의 도약을 위한 그 다음 한걸음이 참 어렵다. 늘 그랬다. 이리저리 발버둥치다- 때론 흘러가는대로 유영하다- 갈피를 못잡던 나의 일상이 부쩍 안온해지기 시작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사람도, 차도, 건물도 빽빽하기만한 도쿄 중심부를 조금만 벗어나면 이런 놀라운 한적함이 펼쳐진다. 내가 찾았을 당시만 해도 그렇게까지 붐비는 곳이 아니어서 한국 사람은 커녕, 사람도 ..